김학민

광부로서 한 평생을 석탄 캐는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고난의 행군 (북한이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급격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 식량난)이 시작되면서 월급 한 푼 받지 못하자, 예전부터 취미로 해오던 전자제품을 수리하면서 간간히 먹을 것을 얻어 오시곤 했다.

나는 아빠가 수리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배워 13살쯤부터는 시계수리가 가능해지면서 동네는 물론 다른 지역까지 소문이 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가족의 생계를 내가 책임지게 되었고 3년 후에는 아버지까지 돌아가셨다. 나는 꾸준히 전자제품을 수리했는데, 특별히 CD플레이어의 수리를 많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드라마는 물론 문화까지 접하게 되었고 이게 계기가 되어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다.

좋은 동기로 가득했던 나의 탈북은 생각보다 녹녹치 않은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대학이 필수코스인 한국 대학생들처럼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자리를 얻는데 문제가 많았고, 나는 신체적으로 건장한 사람도 아니다 보니 아무 일이나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절망스러운 시간을 1년이나 더 보낸 후 서강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어느 날 대학교에서 고장 난 나의 휴대폰을 수리하던 중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동기가 설마 네가 스스로 이걸 고쳤냐며 서강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휴대폰 수리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제안을 해주었다. 그리고 동기는 대학교 커뮤니티에도 직접 홍보를 해주었다.


정말 많은 대학생들의 전자제품을 수리해주면서 공부할 시간마저 부족했다. 학업과 전자제품 수리를 동시에 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던 나는 사업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선택을 하면서 "서강잡스"를 설립하게 되었다.

오늘날 전자제품은 그냥 전자제품이 아닌 인간의 생활 깊은 곳까지 들어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주기도 하고 힐링도 해주는 중요한 친구가 되었다. 그렇기에 전자제품을 수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수리한다는 서강 잡스만의 '슬로건'을 세웠다.


* ISTORY 학민 티를 구매하시면 QR CODE를 통해 풀 스토리를 보실수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아름다운 법.